[인터뷰]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후속 가능성? 결정권 없지만 만들어진다면 고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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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후속 가능성? 결정권 없지만 만들어진다면 고민할 것”
  • 변진희 기자
  • 승인 2020.05.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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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변진희 기자] 영화 ‘사냥의 시간’이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윤성현 감독은 9년 만의 차기작이자, 약 2년간의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된 작업물을 선보이게 됐다.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4명의 친구들과 이들을 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사이에서 펼쳐지는 지옥 같은 사냥의 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4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좋은 말도 있고 비판하는 말도 있어서 반응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저는 우선 영화가 공개되길 너무 바라던 입장이라, 공개됐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거든요. 실감이 안 나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아무래도 영화가 시청각적인 부분에 중점을 둬서 낯설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냥의 시간’은 대사가 적더라도, 영화적 본질로서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윤성현 감독이 작품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다. 지난 2016년부터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그는 ‘사냥의 시간’만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그래피티, 스트리트 패션, 힙합 음악 등 서브 컬처 요소들을 적극 반영했다. 낙후된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별해 촬영했고, 이후 디테일한 CG 작업을 거쳐 퇴색한 도시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대던 시기였어요. 거기에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결합시켰죠. 생존에 대한 감정과 사회적 박탈감을 시각화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걸 표현하기 위해 공간, 사운드, 미술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했고요. 대신 현실과 너무 괴리가 있는 지옥이 아닌, 지금 현실에 근접한 느낌의 지옥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어요. 빈민가, 경제가 붕괴된 형태의 이미지를 많이 참고해서 완성했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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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검붉은 조명과 사운드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윤성현 감독은 사운드가 지닌 힘을 최대한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이곳이 한국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아무래도 극장의 환경을 TV나 모니터로 전달할 수 없어서 아쉬워요. 그래도 요즘 워낙 사운드 시스템이 좋아진 부분이 있어서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해요. 검붉은 조명을 사용한 이유는, 지옥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붉은색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마지막 싸움 장면에 붉은 라이트를 많이 사용했어요. 그 외에는 공간들이 지닌 특징에 따라 색감을 맞췄고요.”

윤성현 감독은 지난 2018년 7월 촬영을 마치고 꽤 오랜 기간 후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지난 11월로 개봉일을 정했으나 경쟁작으로 인해 날짜를 미뤘고, 2월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또 한 번 연기했다. 이후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던 콘텐츠판다와 배급사 리틀빅픽쳐스간의 분쟁 끝에 넷플릭스를 통한 공개를 결정했다. 윤성현 감독은 이 과정에서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후반 작업에서 CG가 많이 들어갔어요. 그러고 편집을 지난해 여름에 마쳤고, 영화가 많은 걸 담고 있어서인지 러닝타임이 3시간 20분 정도 되는 거예요. 그걸 2시간 정도로 줄여야 해서 또 편집을 하게 됐어요. 그런 작업들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됐죠. 원래 11월 개봉을 목표로 했는데, 그때 ‘겨울왕국2’가 들어오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2월로 밀린 거예요. 덕분에 작업할 기간이 늘어나서 색감 작업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어서 좋긴 했어요.

어떤 분은 ‘너 정신병 안 걸리고 잘 버틴다’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다행히 제가 낙천적인 성격이라 잘 견딘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30~40년 후에 돌이켜본다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라 생각하며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어요.”

윤성현 감독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작 ‘파수꾼’과 이번 ‘사냥의 시간’에 고스란히 담겼다. 10대 청소년들의 삶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작품이 ‘파수꾼’이라면, ‘사냥의 시간’은 희망이 없는 도시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에 주목한다. 윤성현 감독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존에 대한 은유가 담긴 영화다”라고 ‘사냥의 시간’을 소개했다.

“제가 젊은 세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하는 한국 영화가 있거든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한국 영화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런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강한 매력을 느껴요.”

이제훈, 박정민은 ‘파수꾼’ 이후 ‘사냥의 시간’으로 다시 윤성현 감독과 재회했다. 이제훈은 위험한 일을 가장 먼저 계획하는 준석 역으로, 박정민은 필요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정보원 상수 역으로 활약한다. ‘파수꾼’ 때와 유사한 관계성을 지닌 캐릭터를 동일한 배우로 캐스팅한 것이 다소 식상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지만, 윤성현 감독은 주저 없이 두 사람을 선택했다.

“워낙 두 배우와 친하고, 다시 또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도 함께했어요. 저는 ‘파수꾼’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냥의 시간’을 썼거든요. 장르도 다르고,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같은 배우가 출연하기 때문에 비슷한 그림으로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파수꾼’이 독립영화라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셨을 줄은 몰랐거든요(웃음). 애초에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사냥의 시간’을 준비했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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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은 이제훈, 박정민뿐 아니라 현재 핫한 배우로 손꼽히고 있는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 등이 출연하며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친구들을 위해 위험한 계획에 앞장서는 장호 역의 안재홍, 누구보다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는 의리파 기훈 역의 최우식,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 역을 맡은 박해수까지,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의 몰입을 높인다.

“최우식 씨는 2011년부터 지켜보면서 가능성을 크게 봤어요. 인간적인 만남이 있거나 관계가 있진 않았지만, 오랫동안 작품을 봐왔죠. 그래서 같이 하게 돼서 정말 기뻤어요. 최우식 씨는 굉장히 동물적이고 직관적으로 연기해요. 예상치 못한 느낌의 연기를 해내는 걸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안재홍 씨는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기 전에 캐스팅을 했었는데요. 이제훈 씨가 추천해 줘서 만났고, ‘족구왕’을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서 함께하게 됐죠. 안재홍 씨는 매 테이크마다 다르게 연기를 하더라고요. 가진 역량이 폭넓고,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 생각했어요. 박해수 씨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모습이 인상적이라 연극을 찾아서 보게 됐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한 캐릭터가 되게 신적인 느낌으로 보이길 바랐거든요. 걸음걸이, 표정 등 디테일이 중요했는데 그걸 잘 표현해 줬어요.”

앞서 ‘사냥의 시간’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 공식 초청돼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베를린국제영화제’ 측은 “윤성현 감독은 전형적인 스릴러 장르를 근 미래로 이동시켰고, 동시에 현재 한국의 사회적 현실을 매우 효과적이게 계산된 비주얼로 전달한다”라고 호평했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라, 베를린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심지어 베를린의 메인 섹션 중 하나인 갈라에 초청을 받아서 정말 놀랐죠. 베를린은 사회적인 드라마, 아트적인 영화들이 주로 가는 곳이라고 들어서 걱정이 많았어요. ‘이런 판타지적인 영화가 베를린에 간다고?’라고 생각했거든요. 베를린은 예의상 손뼉을 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재미가 없으면 보다가 나가기도 한다고 들어서, 1600석 관객들이 진짜 나가면 어쩌나 걱정되는 거예요. 저만 있는 게 아니라, 배우들도 함께 가는데 박수를 못 받으면 어쩌나 싶었죠. 다행히 상영이 끝나고 다들 진심 어린 박수를 쳐줘서 감동했어요. 배우들도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기뻐했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베를린에서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운드 이미지라고 평가해 줘서 기뻤어요.”

‘사냥의 시간’은 준석이 다시 피 터지는 싸움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며 마무리 돼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다. 주로 시리즈로 작품을 선보이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만큼,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 물었다.

“우선 다음을 염두에 두고 만들진 않았는데요. 열린 결말로 끝나서 후속편에 대한 암시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매트릭스’거든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시즌1에서 인물이 하늘을 나는 장면이 은유와 상징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2편에서 하늘을 날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했어요. 개인적으로는 1에서 끝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많은 분들이 2, 3가 나와서 좋아하셨지만요. ‘사냥의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전하고 싶은 은유의 메시지가 있거든요. 한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게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서요. 후속편이 나오지 않길 바라고 있지만, 이제 저에게 결정권이 없어요(웃음). 만들어진다고 하면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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