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리뷰] ‘어나더 컨트리’, 경쟁·연대·배신으로 얼룩진 청춘의 이상 그리고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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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리뷰] ‘어나더 컨트리’, 경쟁·연대·배신으로 얼룩진 청춘의 이상 그리고 좌절
  • 변진희 기자
  • 승인 2020.06.18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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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AGE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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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희 기자] “힘과 공포심으로 세워진 시스템은 언제나 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힘과 공포심을 다시 선택하게 돼 있지.”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청춘들의 이상과 좌절을 날카롭게 그린다. 계급과 권력에 순응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애쓰는 청춘, 반대로 자신만의 이상향을 그리며 신념을 고집하는 청춘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019년 한국 초연 당시 전 배역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 신인 등용문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어나더 컨트리’가 다시 돌아왔다. 제작진은 재연에 앞서 “인물의 대립구도를 강화하고,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등 드라마를 보강해 작품의 무게감을 더했다”라고 달라진 점을 언급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파시즘과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어나더 컨트리’ 속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는 권위주의와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사회의 축소판 같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닌 학생들의 고뇌와 갈등이 매우 신랄하게 펼쳐진다.

사진=PAGE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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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가이 베넷은 강압적인 학교 제도에 반항하고 비윤리적인 폭력을 반대한다. 또한 오랜 기간 고민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어”라고 고백, “이건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게 아니야. 나 자신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지”라고 말한다. 가이 베넷을 연기하는 강영석은 능청맞고 유쾌한 면모는 물론이고, 동성애 사실을 들켜 체벌을 받은 후 좌절감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까지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캐릭터를 완성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열망하는 사상가 토미 저드는 학교에서 이단아 취급을 당한다. 계급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상을 지닌 만큼 규율에 얽매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지만, 선배들의 압박에 주눅 들어 있는 하급생에게는 따뜻한 말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토미 저드 역을 맡은 문유강은 저음의 탄탄한 발성과 안정적인 딕션으로 인물의 매력을 오롯이 전달한다.

어른들이 만든 국가의 이념, 사회적 규범을 마치 자신의 정체성이 돼버린 듯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냉혹한 평가 앞에 연대와 배신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10대의 나이에 출세를 위해 여과 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씁쓸해진다. 권력 편에 선 학생으로 분한 신예 배우 이지현, 배훈, 심수영, 한동훈, 남가람은 캐릭터의 맛을 잘 살린 호연을 선보인다.

사진=PAGE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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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청춘의 면모는 아름다웠던 젊은 날을 추억하게 하게 하며, 고민과 갈등 속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공감을 이끌어 몰입하게 한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대사,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등장하는 BGM 역시 극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다만 이념과 관련한 용어와 인물명이 거론되고 트웬티투(학생회), 프리펙트(선도부)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등장해 조금은 어려울 수 있겠다. 사전 정보를 파악하고 본다면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어나더 컨트리’는 오는 8월 16일까지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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