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레깅스 판결' 유죄로 뒤집었다...“분노·모멸감도 성적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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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레깅스 판결' 유죄로 뒤집었다...“분노·모멸감도 성적 수치심”
  • 정훈상 기자
  • 승인 2021.01.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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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뉴스1)
(사진제공=뉴스1)

 

[정훈상 기자] 대법원이 버스 안에서 레깅스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촬영한 남성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되돌려 보냈고,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후 피해자는 '기분이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를 성적 수치심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앞서 A씨는 2018년 5월 버스 단말기 앞에서 하차하려고 서 있던 B씨의 뒷모습을 8초 동안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가 성적 욕망에 이끌려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점, B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항의한 점을 고려해 A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반면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촬영한 신체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으며, 몰래 촬영했지만,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통상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B씨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A씨가 특별히 B씨의 특정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레깅스는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B씨는 이를 입고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며, 성적 수치심과 관련해서는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 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 만으로 한정할 경우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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