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인문학] 언어학자는 메뉴판에서 무엇을 볼까

기사입력 : 2018-06-19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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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lipartkorea
[마켓뉴스 오해영 기자] 언어학자가 메뉴판을 펼쳐들면 무엇이 보일까.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
고급 레스토랑 메뉴와 리뷰에는 왜 섹스 은유가 자주 나올까?
세계적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하겐다즈에는 어떤 음운학적 마케팅이 숨어 있을까?
왜 프랑스에서는 애피타이저인 앙트레가 미국에서는 메인 코스일까?
중국 음식이었던 케첩이 미국 국민소스로 둔갑한 사연은 무엇일까?

TV도 SNS도 푸드포르노로 넘쳐나는 음식의 시대에,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우리의 허기를 품격 있게 채워준다.

그는 고대의 레시피에서 과자 포장지 홍보 문구까지 다양한 음식의 언어들을 통해 케첩, 칠면조, 토스트, 밀가루, 아이스크림이 품고 있는 수천 년 인류 문명의 진보와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발굴해내고, 메뉴판에 담긴 레스토랑의 영업 전략, 앙트레의 용법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계급, 포테이토칩이나 아이스크림 마케팅이 겨냥하는 우리의 취향, 맛집 리뷰에서 호평과 악평의 차이점을 분석하며 인간의 진화와 심리, 행동을 해독하는 은밀한 힌트를 던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교양 강의 ‘음식의 언어Language of Food’는 7만 명 이상이 수강한 스탠퍼드의 최고 인기 과목이다. 이 과목을 가르치는 댄 주래프스키는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1998년 과학과 공학 분야 교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NSF 커리어상과 2002년 천재들의 상이라 불리는 맥아더펠로우십을 받았다. 그는 방대한 언어학적 도구를 이용해 심리학, 사회학, 행동경제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학제간 연구를 시도한다.

댄 주래프스키는 특히 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음식’의 언어에 주목하며, 이를 탐구함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세계의 문화, 사회, 경제를 다시 쓰고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의 근원을 파헤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먹기 어원학’이라 일컬어도 좋다고 말하지만, 음식의 언어가 과거를 향한 어원학적 단서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음식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현재를 더 잘 이해하는 열쇠라고 밝힌다. 그가 가르치는 ‘음식의 언어’는 문화인류학에서 심리학, 행동경제학까지 아우르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새로운 인문학이다.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상징, 케첩의 사연을 쫓다

케첩을 만들어 먹는다고?
'삼시세끼-어촌편'에서 ‘차줌마’는 토마토케첩을 뚝딱 만들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에게는 사 먹는 게 당연한 가공품이 한 배우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지는 영상을 보며 우리는 놀라워했고 열광했다. '음식의 언어'는 바로 이 토마토케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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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케첩이라는 말 앞에 꼭 ‘토마토’를 덧붙일까?
토마토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케첩을 토마토로 만든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말이다. 댄 주래프스키는 이 사소한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언어학적으로 치밀하게 탐구해낸다.

결론은? 케첩은 미국이 아닌 중국 음식이었다는 것, 그리고 주재료는 토마토가 아닌 생선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토마토도 들어가지 않았던 중국 전통의 생선 소스가 어떻게 미국 국민 소스로 둔갑했을까?
주래프스키는 전투 중인 한무제를 사로잡았던 강렬한 맛의 기록에서부터 대항해 시대에 해적과 선원들이 변주했던 케첩의 칵테일 버전, 제인 오스틴이 즐겨 먹었던 호두 케첩 레시피,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후 저장성을 높여 상품화시킨 오늘날의 토마토 케첩까지 케첩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수천 년 모험의 역사를 전통 없는 한낱 가공품 소스로 보였던 케첩이 실은 위대한 문명의 모태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케첩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국민음식으로 여겨지는 피시앤드칩스, 그저 구운 빵일 뿐이었던 토스트, 이국의 추수감사절 요리인 칠면조, 흔하디 흔한 밀가루와 소금, 현대 과학의 부산물인 듯한 아이스크림에 담긴 흥미진진한 사연과 그 매혹적인 여정을 함께 거치고 나면 이제는 그 음식들을 예전처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삼시세끼'의 미학 중 하나는 평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토마토케첩이나 빵, 어묵 같은 음식들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어떤 사소한 음식이라도 그들만의 오랜 사연을 품고 있는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어떤 포테이토칩을 고르느냐가 당신의 문화계급을 말해준다

과자업계를 쓸고 간 허니버터칩 열풍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SNS 특히 인스타그램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애초에 SNS에 흔한 포테이토칩을 인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식욕의 역사를 담은 언어는 과거를 향한 어원학적 힌트에만 그치지 않는다.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과 언어를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으로 접근해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명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가 먹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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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래프스키에 따르면, 포테이토칩 하나에도 우리의 취향과 퀴진의 문법이 담겨 있다.
그는 포테이토칩 포장지에 쓰인 홍보 문구들을 분석해 문구와 가격의 상관 관계를 밝히고 음식 광고가 겨냥하는 청중의 부류를 둘로 나눈다.

거기에서 우리는 내 속에 잠재된 건강하고 우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가족과 사회문화에 합일하고 싶다는 소속감을 확인한다. 또한 메인 코스 요리가 아닌 디저트에서 퀴진 문법을 깨는 일탈의 미학을 누리려는 우리의 뿌리 깊은 쾌락의 열망을 발견한다. 디저트는 단지 맛있는 후식이 아니라, 꽉 짜인 퀴진 문법에서 비문법적 요리를 창조해내는 도구인 것이다.

암묵적인 규칙과 규범에 대한 반항과 혁신이 우리가 스낵에서 맛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짭짤하고 심심하던 포테이토칩 시장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공표하는 재미를 선사했던 허니버터칩에도 이러한 (비)문법은 그대로 적용된다.

데이터화된 고대의 레시피, 백 년 전 온라인 메뉴 컬렉션 1만 개, 현대식 메뉴 6,500건, 요리 가짓수 65만 건, 백만 건의 맛집 리뷰 등 계량 언어학적 도구를 사용한 그의 광범위한 연구조사는,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는 사실부터 프랑스에서는 애피타이저인 앙트레가 미국에서 메인 코스로 쓰이는 이유, 마카롱의 갑작스러운 유행에 담긴 계급의 취향, 음식 브랜드네이밍에 숨겨진 음운학적 마케팅의 비밀, 맛집 리뷰에서 섹스 관련 단어가 많이 언급될수록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놀라운 사실까지, 우리의 문화, 사회, 경제, 심리를 정확히 해독해낸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취향을 개발해내고 교양을 쌓아가며, 우리가 먹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그러한 문화의 산물이다.

참고 자료: 음식의 언어, 저자 댄 주래프스키

오해영 기자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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