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인문학] 생명공학·자본·국가 담론이 복잡하게 얽힌 ‘생명자본’

기사입력 : 2018-05-16 08:10:00
[마켓뉴스 오해영 기자]
생명공학과 시장 논리가 만든 ‘생명자본’

10년 전 ‘황우석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의 ‘배아줄기세포’ 프로젝트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 위상을 드높이고 막대한 경제 효과를 낳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에 과학적·윤리적 결함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후 한동안은 우리 사회 전체가 광기에 휩싸인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과연 하나의 ‘특수한’ 사례일까?
한 개인 혹은 집단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우연적’ 현상일까?
혹시 과학·자본·국가의 공모가 구성하는 구조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하나의 징후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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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lipartkorea

카우시크 순데르 라잔(Kaushik Sunder Rajan)의 '생명자본: 게놈 이후 생명의 구성'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이해되어 온 생명공학 산업의 이야기를 자본주의와 세계화라는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과학과 사회의 상호구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된 순데르 라잔은 여러 인문사회과학 이론과 다양한 현장 조사를 통해 ‘생명자본’(biocapital)의 메커니즘에 대한 빛나는 통찰들을 제시해 준다.

순데르 라잔은 미셸 푸코를 따라 ‘생명ㆍ노동ㆍ언어’를 근대성의 세 구성 요소로 본다.
생명공학, 자본, 국가, 담론이 복잡하게 얽힌 ‘생명자본’의 문법을 탐구한다.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기초해 이 세 요소의 결합이 생성한 생명자본의 문법을 드러낸다. 생명자본은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 자본주의 논리, 제1세계와 제3세계의 비대칭성이라는 기술·자본·국가가 ‘공동생산’(coproduction)한 결과물이다.

이를 분석하면서 순데르 라잔은 과학을 아무런 이해관계도 반영하지 않는 순수한 활동으로 여기거나, 반대로 과학을 철저하게 자본에 봉사하는 활동으로 여기는 단순한 시각을 거부한다. 인류학자인 그는 생명공학 연구소, 미국과 인도, 신생 생명공학 회사들 등 여러 현장(site)을 누비면서 과학과 자본, 국가의 ‘구조적’ 얽힘을 분석한다. 이 구조는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현장들의 복합적 전체이다.

즉, 자본주의를 단일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생명자본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에 속한 하나의 요소인지, 반대로 그것이 어떤 새로움을 자아내는지를 동시에 분석한다.

하지만 생명자본이 일방적으로 구조의 영향을 받는 현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구조와 국가들의 행위를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자본은 ‘구조 속의 현상’이자 ‘구조를 변화시키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면모, 세계화에 대처하는 국가들의 전략, 비대칭적 권력 구조 안에서 상이하게 구성되는 주체성들을 비춰 주는 창이다.

생명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생명공학은 ‘사업’ 가능성 덕분에 점점 더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다.
게놈학(genomics)으로 대표되는 생명공학 산업은 특히 ‘치료제’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 막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주로 미국에서) 복잡한 지형이 형성된다. 순데르 라잔은 이 지형을 '신약 개발의 상류-하류 지형'이라고 부른다.

신약 개발은 ‘신약 발견’과 ‘임상 실험 및 치료 분자 제조’의 두 단계로 나뉜다. 초기 단계는 상류(upstream) 단계, 후기 단계는 하류(downstream) 단계라 불린다. 그리고 상류 단계는 과학 연구를 통해 약품 개발에 매진하는 소규모 생명공학 회사가 담당한다. 하류 단계는 자본 집약적인 약품 제조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거대 제약 회사가 주로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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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lipartkorea

이 지형은 단순해 보이지만, 자본 논리는 이를 전략적 기업 행위의 장(場)으로 만든다. 상류의 생명공학 회사들은 자신이 개발한 과학적 성과물을 ‘특허’ 내고, 상류의 제약 회사에 ‘인가’한 뒤, 판매액에 대한 ‘로열티’를 받으려 한다.

그런데 과학적 발명에 대한 특허를 받고자 하는 생명공학 회사의 행동은 공공 연구기관과 마찰을 빚는다. 공공 기관들도 먼저 발명에 성공해 그것을 ‘공공 재산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놈학을 비롯한 생명공학에서는 ‘공’과 ‘사’의 경쟁이 가속화된다.

하지만 공-사 구분마저도 제약 회사의 개입으로 모호해진다. 거대 제약 회사들 입장에서는 과학적 발명을 공공 기관이 달성할 경우, ‘특허 인가’에 따른 ‘로열티’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제약 회사들은 특허 체제에 반대하고(이는 그 자체로는 ‘시장 논리’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공학 회사보다는 공공 기관이 발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준다.

나아가 미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신약 개발의 상류-하류 지형은 ‘세계화’로 인해 한층 복잡해진다. 생명자본 현장 중 하나인 인도는 이전에는 세계적인 국영 제약 산업 주자였지만, WTO가 부과한 특허 체제(이는 인도의 강점이었던 ‘약품 역공정’을 금지한다) 탓에 과거와 같은 수익을 올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기존의 ‘반제국주의’ 입장에서 벗어나 ‘기업으로서 국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국가 주도의 생명공학 산업을 육성하려 한다.

하지만 이 변화는 대단히 모순적인 결과를 낳는다. 한편, 인도 정부는 ‘시장 주자’로서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서구 기업에게 침탈당할 때는 여전히 ‘반제국주의’ 수사를 앞세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설명을 통해 '생명자본'은 ‘생명공학’과 ‘자본 논리’의 결합이 산출하는 복잡한 지형을 드러내 준다.
생명공학 산업 관련 행위자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활동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사용하며 그것들이 낳는 결과도 각각 다르다. 즉 생명공학은 언제나 시장 논리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지만, 반대로 생명공학의 발전은 기업들과 국가들의 행위 전략을 변경시킨다. 자본주의란 단일하고 불변하는 하나의 구조가 아니라 불확정적이고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자본주의들’인 것이다.

'생명자본'이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변화들의 구체적 양상이다.

생명자본은 어떤 인식론과 주체성을 형성하는가

오늘날 자본 논리는 언제 어디서나 관철되지만 모든 국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관철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구조와 각 현장의 특수성 모두를 포착하고자 하는 '생명자본'은 자본의 논리가 서로 다른 현장들에서 ‘비대칭’을 이루며 관철되는 현상을 그 논리 자체만큼이나 핵심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순데르 라잔은 생명자본이 두 현장에서 상이한 귀결을 낳는 데 주목한다.

미국에서 생명자본은 ‘구원’(salvation)의 성격을 띤다. 생명공학의 성과가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 때문에, 생명자본은 유망한 벤처 사업일 뿐 아니라 윤리적 사업으로도 받아들여져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다.

또한 생명공학 산업의 홍보는 언제나 약속과 구원의 수사들로 구성되고, 과장 광고를 낳는다. 결과적으로 ‘투기’의 대상이 된다. 나아가 법과 제도까지 이를 뒷받침한다. 애초의 약속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더라도 기업이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생명자본이 미국에서 산출하는 효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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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매우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제3세계 국가이자 생명공학 산업의 후발 주자인 인도는 미국과의 권력관계에서 약자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종속되어 있지는 않다. 인도 국가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문제는 미국과 인도의 역량과 입장이 비대칭적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욕망은 언제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의 자유시장 상상(imaginary)을 ‘모방’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모방은 인도 내부의 상황과 마찰을 일으킨다.

인도 역시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생명공학 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벤처 자본 배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인도의 이 조처는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사적 투자’라는 벤처 자본의 개념과 완전히 모순된다. 생명자본이 미국에서 ‘구원’의 성격을 갖는 반면, 인도에서는 ‘국가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국제 분업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인도 생명공학 산업은 종종 서구 기업들의 하청업으로 전락하는데, 이 역시 혁신적인 벤처 사업을 진흥한다는 인도의 비전과는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

또한 미국과 인도 생명자본의 비대칭성은 그 ‘주체들’도 상이하게 구성한다. 미국에서 생명공학 산업은 구원의 수사를 통해 ‘맞춤형 의료’(personalized medicine)의 실현을 약속한다. 이는 치료 기술의 ‘개인화’를 표명할 뿐 아니라, 모든 개인을 예비 환자로 취급함으로써 시민의 주체성을 ‘예비 소비자’로 규정한다.

반면 신자유주의화의 여파로 각종 기반 산업이 해체된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는 실직한 노동자들이 (서구 기업의 하청을 받아 진행되는) 임상 실험의 ‘실험 대상’이라는 주체성을 얻게 된다. 생명과 자본의 결합은 미국과 인도의 주체를 모두 ‘소비 주체’로 만들지만, 미국의 주체는 ‘소비하는 주체’로, 인도의 주체는 ‘소비되는 주체’로 구성됨으로써, 양국의 비대칭성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자본이 여러 현장에서 상이한 형태로 굴절되는 것을 분석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순데르 라잔은 현장들의 ‘구체성’에 주목한다. 또, 단순히 생산관계와 같은 ‘물질적’ 측면만이 아니라, 국가의 비전, 기업의 담론, 시민의 주체성과 같은 ‘추상적’ 차원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보편성과 구체성, 세계화와 지역, 이론과 민족지학을 동시에 사고하기

생명자본은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낯선 현상이다. 자본주의 구조의 보편성에 들어맞는 하나의 징후이면서, 그 구조가 진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순데르 라잔이 강조하는 바는 ‘자본주의’가 초역사적이며 단일한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는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공간적으로는 비대칭성을 유발하는 과정이다. 생명자본을 자본주의 구조에서 벗어난 ‘예외’로 취급하지 않으면서 그 특수성을 포착하려는 순데르 라잔의 시도는 ‘이론’과 ‘민족지학’(ethnography)을 결합한 방법론을 채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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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자본'은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 이론 등에 기반해 생명자본을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일반적 경향’이라는 틀 속에 넣고 분석한다. ‘다양한’ 현장 조사로 이 이론들을 보충한다. 하나의 현장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을 연구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수적으로 많은 현장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현장들 간의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구조의 단면을 엿보기 위해서이다. 세계적 규모의 체계들이 명료해지고 이해 가능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그것들을 구성하는 구체성 속에서인 것이다.

'생명자본'은 이러한 원칙 위에서 어지럽게 얽혀 있는 생명자본의 구성 요소들을 검토한다. 각각의 요소가 어떤 전략을 사용하면서 하나의 총체를 이루는지 그 총체가 역으로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한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계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생명자본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거의 최초의 시도이며, 동시에 우리가 이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려면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분석에 착수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자료: 생명자본 Biocapital: The Constitution of Postgenomic Life (저자 카우시크 순데르 라잔)



오해영 기자/ 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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