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이슈] 북한 체제 개방 엿보기

기사입력 : 2018-06-12 00:10:00
북한보다 먼저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구 공산권 국가들이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의 시장 개방 이후 성장 과정이 북한의 향후 성장 경로를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사례

중국 사례에서 예상해 볼 수 있는 북한의 향후 성장경로는 우선 농업·경공업 중심의 성장을 추진하고, 식량·생필품 부족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경제특구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를 늘려 중공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한편, 초기 개방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이 진행되면 물가 상승·체제 위협 등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1978년 중국 공산당은 덩샤오핑의 주도로 중국의 체제를 개혁하고, 대외개방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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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실질 경제성장률 추이, 자료: Bloomberg, KB증권

덩샤오핑은 선부론 (先富論; 경제 성장 우선주의, 동남연해 우선 개발)과 흑묘백묘론 (黑猫白猫論; 공산주의 원칙을 고집하지 않는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했다. 농촌은 농가 생산책임제를 도입하고, 상업과 공업에서도 기업소유를 인정하고, 자영업을 개방했다. 대외 개방도 실시했다. 1979년 심천 (深朮), 주해(珠海), 산두(汕頭), 하문(廈門)에 경제특별구역을 수립했다. 이는 1984년 14개 연해개방도시 지정으로 확대된다.

중국의 동남연해 중심 개발은 성공적이었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도시와 농촌, 동부와 서부의 지역 간 경제 격차를 증대시켜 불균형 발전을 야기시켰고, 지역 발전으로 인해 치솟는 임대료와 노동자들의 도시 밀집현상으로 물가상승이 발생했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도 심해졌다.

이는 1989년 천안문 사태 (1989년 6월 4일, 중국의 베이징시의 중앙에 있는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로 이어져 사회문제로 부각된 바 있다. 중국 정부의 개방 정책은 천안문 사태로 인해 한때 위축을 겪기도 했으나, 1992년 남순강화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덩샤오핑의 남방 경제특구 순회)로 다시 강화된다.

이에 따라 중국 GDP 증가율은 체제개혁·대외개방 이전 5% 수준 (1971~1977년 평균)에서 개혁 이후 10% 수준 (1978~1988년 평균 10.2%)으로 높아진다. 물가상승 등 초기 개방 부작용과 천안문 사태 영향으로 개방이 지체된 시기 (1989~1991년 평균 5.8%)를 제외하면 2010년까지 평균 10% 이상의 GDP 증가세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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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개방 추진내용, 자료:KB증권

중국의 개혁 초기 성장에서는 농민의 수익 증가를 통한 소비 확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중국은 농업개혁 이전까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던 만큼, 농업을 통해 성장률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인구 다수가 농민으로 구성되어 여타 산업 고용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농업 개혁으로 농민층이 절대 빈곤에서 탈피하게 되자 1990년대에는 이를 기반으로 다른 분야의 개혁도 추진됐다.

반대로 개혁 초기 외국인 직접투자 (FDI; 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이 단순히 자산을 국내에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참가와 기술제휴 등 국내 기업과 지속적인 경제관계를 수립할 목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는 낮은 수준이었다. 개방 초기 해외 자본 유입은 주로 원조 중심의 자금 지원이었다. 경제특구의 지정 효과가 FDI로 연결되는 데는 5~10년이 소요됐다.

베트남의 사례

북한이 베트남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도 유사하다. 농업·경공업 중심의 성장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이후 해외 직접투자를 늘려 중공업 육성을 꾀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은 북한이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다.

베트남의 체제개혁·대외개방은 1986년 ‘도이 모이 (Doi Moi, 쇄신의 뜻)’라는 슬로건에서부터 시작됐다. 베트남은 1991년 캄보디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제 사회의 신임을 얻었고, 1994년 미국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 1995년 미국과의 수교로 이어졌다. 그 이후 ASEAN 가입, FDI 확대, IMF, ADB 등의 국제기구의 금융적 지원을 통해 개혁에 대한 성과가 가시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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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GDP 증가율 추이,자료: IMF, KB증권

베트남과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지배에 의한 정치적 안정, 적극적 경제개혁 추진,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 보유 등의 측면에서 유사한 환경을 가졌다. 경제개혁 추진 내용에 있어서도 개혁 초기 국면에서는 농업 및 경공업을 육성, 농산물과 소비재 생산 증대를 통한 국민생활 안정을 추구했다. 이후 수출 증대를 통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외화를 조달하고 공업화를 진행했다.

베트남도 1991년부터 수출가공구 (EPZ; Export Processing Zone, 경제특별구역과 유사)를 설립해 해외자본 유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1년 딴뚜언 공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8개 수출가공구·경제특구를 설립했다.

베트남은 외국 기업들의 제조업 투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베트남 국내에서의 부품소재 조달률은 30%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제조업 기업이 충분히 커나가지 못하는 한계로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100대 기업의 업종별 분류를 살펴보면 금융, 석유·가스, 식품, 전기·전력 업종이 100대 기업 중 55개에 포함돼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전자,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의 제조업 비중은 10% 이하로 낮다.

과거 비핵화 사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비핵화 합의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한다. 다만 실제 실무 협상의 쟁점은 ‘비밀 핵시설’에 대한 사찰 여부가 될 것이다. 결국 북-미 비핵화 과정은 북한의 은닉과 미국의 추적 과정이 될 공산이 크다.

핵폐기와 보상은 단계적으로 번갈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핵동결-불능화-폐기’ 이행 단계별로 부분적인 경제제재가 완화되는 형태다. 비핵화 최종 단계에서 평화 협정 체결· 북미 수교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신속한 단계적 비핵화’를 의도하는 만큼, 핵시설 폐쇄와 핵탄두 반출 등 비핵화의 여러 단계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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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국제사회의 북한 경제제재는 크게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유엔 제재·미국 독자제재의 해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으로 제재를 주도한 국가다.

유엔 제재 해제는 사실상 미국의 입장 변화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상임이사국은 모두 거부권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요구에 반대할 국가가 딱히 없다 (반대로 제재 결의는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 변화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유엔의 역할 측면에서도 IAEA가 유엔 산하 기구이기 때문에, IAEA 사찰은 유엔이 핵폐기 절차에 관여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재 해제 근거가 된다.

과거 리비아의 경우에도 2003년 초부터 핵폐기 물밑 협상을 시작한 이후 9월에 유엔 제재가 해제됐다. 실제 리비아 핵 사찰이 이뤄진 것은 2003년 10~12월이다.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는 이보다 더 늦은 2004년 4월에 이뤄졌다.

어느 결의안부터 해제될지는 아직 알기 힘들다. 미국은 구체적인 개별 제재안 해제 순서 혹은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폭넓은 로드맵 수준만 합의되고, 구체적인 핵폐기 절차와 보상은 실무 단계 협상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참고적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순서를 알아둔다면 해제 순서가 역순에 가까울 것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겠다.

과거 체제 개방 사례

비핵화가 완료되면 북한은 대외 개방에 나설 전망이다. 초기에는 농업, 경공업 소비재 육성 정책이 예상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비료, 경공업 자재 중심의 지원이 늘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 민주화 요구 등 체제 불안의 가능성이 있으며, 정권 내부에서는 과거 개혁 이전으로의 복고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이 시기가 북한 개혁·개방의 중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체제전환국 경제특구의 FDI (외국인직접투자) 증가는 5~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체제전환국의 정치적 안정성, 내수 시장의 활용 가능성, 현지 노동력의 생산성 등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자본을 본격적으로 투입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북한이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한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수혜, 프로젝트 파이낸스 확대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수혜가 기대된다.

김영환 KB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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