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초점] '언체인'부터 '개와 고양이의 시간'까지, 젠더 프리 입은 2020 공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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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초점] '언체인'부터 '개와 고양이의 시간'까지, 젠더 프리 입은 2020 공연계
  • 변진희 기자
  • 승인 2020.05.2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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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컨텐츠원,콘텐츠플래닝 제공
사진=컨텐츠원, 콘텐츠플래닝 제공

[변진희 기자]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Gender-free)’ 캐스팅, 처음에는 생소했던 단어가 이제는 공연계의 핫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연극, 뮤지컬의 젠더 프리 캐스팅은 현재 다양한 형식을 띠고 있다. 공연 기획 단계부터 성별을 정해두지 않고 캐릭터를 설정하는 경우, 남성 캐릭터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캐스팅하거나 혹은 반대로 여성 캐릭터에 남성을 캐스팅하는 경우 등이 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의 국내 첫 시작은 지난 2015년 공연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주로 남성 배우가 연기하던 헤롯왕 역에 김영주가 캐스팅되며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간 공연계에는 남성 캐릭터 중심의 극이 많았고, 여성 배우들은 주로 주인공의 엄마, 아내, 연인, 친구 등의 역할에 한정됐던 터. 이에 이에 여성 배우들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 젠더 프리 캐스팅이었다.

이후로 ‘광화문연가’, ‘트레이스유’, ‘적벽’, ‘비평가’ 등 조금씩 젠더 프리 캐스팅 공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여성 배우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연계와 관객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제공하며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 올해도 꽤 많은 젠더 프리 캐스팅 작품들이 공연을 올리며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부터 4월 26일까지 공연한 뮤지컬 ‘데미안’은 독일 작가 헤르멘 헤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0살 무렵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 5명의 배우는 극 중 데미안, 싱클레어를 모두 맡을뿐 아니라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크로머, 피스토리우스, 데미안의 엄마 등으로 수시로 변하는 1인 다역을 선보였다. 그간 남성인 인물에 여성을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데미안’은 또 한번 고정관념을 깨고 성별의 여부를 구분할 수 없도록 혼성 캐스팅으로 호평을 얻었다.

현재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크가 줄리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싱어의 흐릿한 기억을 쫓아가며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안유진, 정성일, 김유진, 이강우가 마크 역을, 정인지, 최석진, 홍승안, 신재범이 싱어 역을 맡았다. 초연, 재연 때와는 달리 올해 삼연으로 첫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한 ‘언체인’은 남성으로 떠오를 법한 두 캐릭터에 성별을 혼합해 캐스팅하며 이전 공연과의 차별화를 뒀다.

이와 관련해 신재범은 마켓뉴스에 “개인적으로 젠더 프리 작품은 뮤지컬 ‘더데빌’ 이후 두 번째로 참여하는 거다. ‘언체인’은 2인극이라, 무대 위에서 어떤 시너지가 만들어질지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더 기대를 많이 했다”면서 “극 중 싱어와 마크가 보여주는 갈등이나 서사가 꼭 남녀로 구분 짓지 않아도 작품을 보는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 생각의 여지가 많아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관객분들이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신유정 연출은 '언체인'을 젠더 프리의 하위 개념인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이라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젠더 블라인드는 사람에게 부여된 특정한 성별에 대해서는 눈을 가리고, 한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서 사람의 중심을 향해 온전한 시선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언체인'은 인간 중심을 바라봐야 하는 연극이다. 비록 두 인물이 극 중에서 여전히 남성이라고 지칭하지만, 인간 내면의 연약한 본성에 도달하기 위해 잠시 특정 젠더를 블라인드하고, 그 중심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라고 의도를 밝혔다. 

사진=MJStarfish 제공
사진=MJStarfish 제공

제작사 MJStarfish는 지난해 뮤지컬 ‘해적’에 이어 올해도 젠더 프리로 캐스팅한 뮤지컬 ‘알렉산더’를 올렸다. 현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인기리에 펼쳐지고 있는 ‘알렉산더’는 경마 열풍이 한창이던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조교사와 말의 운명적 만남과 물러설 수 없는 질주를 그린 작품이다.

‘알렉산더’는 캐릭터 자체에 성별을 부여하지 않고, 빌리 역과 알렉산더 역 모두에 남녀 배우를 함께 캐스팅했다.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혹은 받아들이는 관객에 따라 캐릭터의 특성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오는 7월에도 젠더 프리 캐스팅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올해 7월 7일 창작 초연을 올리는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랩터와 플루토라는 두 캐릭터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서술해나간다. 랩터 역은 송원근, 고상호, 유리아, 배나라가 맡았으며 플루토 역은 고훈정, 문태유, 강지혜, 김우석이 낙점됐다.

사진=아떼오드 제공
사진=아떼오드 제공

젠더 프리 캐스팅은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게 했고, 극 중 인물을 성별에 한정 짓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여성 배우의 비중은 적고, 남성 캐릭터에 일명 ‘걸크러시’한 이미지를 지닌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먼 젠더 프리 캐스팅, 이제는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몫도 중요하다. 여성이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굵은 목소리와 거친 행동을 보인다거나, 남성이 얇은 목소리와 과장된 행동으로 연기한다면 오히려 관객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운 만큼 향후 젠더 프리 캐스팅 공연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창작진, 배우 모두 젠더에 대한 깊은 고민, 캐릭터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공연들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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