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감고 건너뛰고 요약해서 보는’ 소비자를 잡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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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감고 건너뛰고 요약해서 보는’ 소비자를 잡는 법!
  • 김성태 기자
  • 승인 2023.10.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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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하 연구원, ‘전지적 편집자 시점의 콘텐츠 소비’ 보고서에서 “소비자 콘텐츠 선택 경험 주목해야”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는 동영상 강의를 볼 때 주로 사용되던 시청 방법이다.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로 관계없는 십여개의 영상을 겹쳐 보여주거나(왼쪽) 뉴스 화면 하단에 해변 풍경을 배치(오른쪽)한 틱톡 슬러지 영상. 출처=틱톡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는 동영상 강의를 볼 때 주로 사용되던 시청 방법이다.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로 관계없는 십여개의 영상을 겹쳐 보여주거나(왼쪽) 뉴스 화면 하단에 해변 풍경을 배치(오른쪽)한 틱톡 슬러지 영상. 출처=틱톡

영상 콘텐츠가 역사상 가장 값싼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은 많은 콘텐츠를 빠르게 섭렵하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소개하고 기업들이 고민해야할 포인트는 과연 뭘까. 채윤하 LG경영연구원은 최근 작성한 보고서 ‘전지적 편집자 시점의 콘텐츠 소비’에서 “콘텐츠 소비자들의 달라진 속도 감각은 언제나 이들을 주목하고, 소통하고,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기업에 공통의 화두를 제시한다”며 “소비자의 콘텐츠 선택 전후의 경험에 주목해야 하고, 소비자의 보다 자유로운 ‘편집자적’ 콘텐츠 소비 방법을 고민해야 하며, 고객과의 소통 경험에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아사히TV는 지난 5월, 심야 토크쇼 ‘소레이루? 롯폰기카이기(ソレいる?六本木会議)’를 이례적으로 1.2배 빠르게 방영했다. 방송사 측은 비인기 심야 시간대에 젊은이들의 고민거리나 사회 이슈를 다룬 대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해당 회차의 주제는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 속 TV의 존재 가치’였다. 

놀랍게도 ‘이단(異端)의 편집’을 보도한 기사에는 5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알아듣기 어렵다거나 왜곡된 영상이 불편하다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기존 TV 프로그램에 불필요한 반복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젊은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은 1.2배 이상의 속도로 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빠른 콘텐츠 경험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위해 공중파 방송까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는 동영상 강의를 볼 때 주로 사용되던 시청 방법이다. 영상을 빨리 감거나 장면을 건너뛰면 음성이 우스꽝스럽게 변형되고 주요 내용이 누락될 우려가 있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학습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이고 묵음 구간을 건너뛰는 것이 필수로 여겨졌다.

채윤하 LG경영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은 감상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영화나 드라마조차 정상 속도로 끝까지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자막 켜고 1.5배속이 국룰’이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빨리 감기’ 및 ‘건너뛰기’ 시청은 저변이 확대돼 있다. 채윤하 연구원은 “이러한 행태는 비단 디지털 기기와 앱 활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며 “일본 미쓰비시UFJ신탁의 조사에서는 20대 남성의 56.5%가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본다고 응답했는데, 50대 남성의 46.9%도 같은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세대와 관계없이 45% 이상의 응답자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은 매일 평균 1억3600만 회나 이용되고 있으며, 유튜브 사용자들이 빨리 감기로 영상을 재생해 아낀 시간은 하루에 900년에 달한다. 유튜브는 영상을 효과적으로 건너뛰며 볼 수 있도록 다른 사용자들이 ‘많이 본 구간’을 그래프 형태로도 알려주고 있다.

채윤하 연구원은 “빨리 보면서도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요해진 것이 자막”이라며 미국 언어교육 앱 ‘프레플리(Preply)’의 2022년 설문조사를 인용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70%와 밀레니얼 세대의 53%는 청력 이상 여부와 무관하게 자막을 켜고 영상을 시청한다고 한다. 자막 서비스는 줄거리를 이해하고(74%) 화면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도움(68%)이 될 뿐만 아니라, 말한 내용을 놓쳐 되감는 일을 줄여준다(55%)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넷플릭스는 2022년에 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 4에서 대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과 질감까지 자막으로 처리하며 자막의 표현 범위를 넓혔다. 채윤하 연구원은 “콘텐츠를 더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요약본’이 답”이라고 했다. 유튜브의 요약 영상을 이용하면 약 12시간 분량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을 끝까지 몰아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로 하여금 영상의 러닝타임을 줄이고 영상을 압축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채 연구원은 “우선 동영상 구독 서비스의 확산으로 소비자들의 콘텐츠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OTT 서비스를 통해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무제한에 가까운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미국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전부 보는 데 필요한 시간은 3만6000시간에 달했고, 유튜브의 동영상은 전 세계에 걸쳐 1분마다 500시간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에선 OTT 가입 가구 중 4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는 가구의 비율이 2019년 11%에서 2022년 35%로 늘었다. 가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4종 구성(넷플릭스, 훌루,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디즈니플러스)으로 2023년 1월 기준 이용 가능한 영화와 시리즈물의 수는 2만2000여 개를 넘는다. 
채 연구원은 “이제 소비자들은 집에서 쉴 때뿐만 아니라 가사를 하거나 이동 중에도, 심지어 업무 중의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며 “매순간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틈틈이 더 많이 소비하는 데에는 러닝타임 단축이 도움이 된다. 관심있는 콘텐츠를 빠르게 보고 나면, 구독을 중단해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채윤하 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시간과 주의력을 아껴주는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전문가의 추천을 나침반 삼아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고, 하나하나 깊이 몰입해 감상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전지적 편집자’로 탈바꿈한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우선 콘텐츠의 가치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즉시 다음으로 넘어간다. 채 연구원은 “콘텐츠 소비자들의 달라진 속도 감각은 언제나 이들을 주목하고, 소통하고,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기업에 공통의 화두를 제시한다”며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첫째, 소비자의 콘텐츠 선택 전후의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숏폼, 롱폼 여부를 떠나 소비자들은 원하는 재미 요소를 담은 콘텐츠가 맞는지 빠르게 확인하고 압축적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이때 요약 영상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선별 수단이자 진입 경로로서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콘텐츠로 소비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와 풍부한 2차 창작물을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은 부가적인 즐길 거리를 확장해 콘텐츠 경험의 가성비를 높이는 데에도 중요하다. 

둘째, 소비자의 보다 자유로운 ‘편집자적’ 콘텐츠 소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최소한의 집중력으로도 자신이 선택한 콘텐츠의 내용을 놓치지 않게 돕는 것은 일차적으로 콘텐츠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과제일 것이나, 경험 환경을 뒷받침하는 하드웨어 제조기업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 

셋째, 고객 및 구성원과의 소통 경험에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다. 오늘날 달라진 콘텐츠 소비자들은 또한 기업의 고객이자 구성원으로서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있다. 필수적이지만 흥미를 끌기 어려운 기업 콘텐츠의 내용을 소비자가 쉽고 빠르게 인지하도록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거나, 콘텐츠의 형태와 배포 방식에 다양성을 가미하는 전략은 앞으로 더욱 유용할 것이다. [정리=김성태 마켓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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