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8000억원 기부하고 임대아파트에 살다 영면한 척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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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8000억원 기부하고 임대아파트에 살다 영면한 척 피니
  • 이사론 기자
  • 승인 2023.10.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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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용사 피니,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 영향으로 베푸는 삶 살아 
2만원 짜리 시계차고, 버스타고 다니며, 이코노미 이용
사진=자선재단 페이스북 갈무리

세계적인 면세점 DFS 공동창립자 척 피니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9일(현지 시각)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부였던 피니는 노후 생활을 위해 200만달러(약 27억원)와 5명 자녀에게 남긴 일부 유산을 제외하고 모두 기부했다. 그가 사회에 환원한 재산은 80억달러(약 10조8000억원)에 달한다.

코넬대 경영학과를 나온 피니는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모교에 기부했는데 코넬대는 2012년 그에게 ‘업계의 아이콘’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당시 코넬대는 저렴한 시계를 차고 다니는 피니에게 일부러 13달러(약 1만7000원)짜리 카시오 시계를 선물했다. 이에 피니는 “이베이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해줘 감사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척 피니는 1931년 4월 23일, 뉴저지의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험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는 청교도 정신으로 자녀들을 반듯하게 키워냈다.

피니는 10대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와 우산 등을 팔아 용돈을 마련했다. 골프장에서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 자원 입대했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공군으로 복무한 경험을 살려 미 군함에서 면세 술을 팔기도 했다.

전역한 뒤 전역자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을 받아 코넬대에 입학했다.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재학 시절에 샌드위치 장사로 돈을 벌며 일찌감치 사업가의 자질을 보였다. 1956년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이후 1960년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여행·관광 산업이 커지면서 번창했다.

피니는 1982년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설립하고 대학·병원·미술관 등에 익명이나 가명으로 기부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과 아일랜드를 넘어 베트남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으로 기부 범위를 확대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제공하고 아프리카의 급성 전염병 퇴치를 위해 거액을 투자했다. 
  
1997년 DFS면세점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법정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로인해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뉴욕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15년 동안 2900회 지출된 금액이 무려 40억 달러나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재산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곧 진실이 드러났다. 비밀 장부의 지출 내역은 모두 기부 기록이었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2020년 전 재산 80억 달러를 기부하고 자선재단을 해체했다.

뉴욕타임즈는 80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생전에 전부 기부한 것은 기부가 잦은 미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거액을 기부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롤모델로 꼽는 인물이 바로 피니이다. 

검소하고 남을 돕는 피니의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름아닌 부모였다. 대공황 시절, 경건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일랜드 노동자 부모로부터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을 배웠다. 특히 적십자 자원봉사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 매들린은 평소 "남을 도울 때 받은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돕는 행위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도움을 받는 이의 기분을 헤아리라는 뜻이었다.

피니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척 피니는 재산의 4분의 3을 기부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처럼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를 원했다. 그의 신념은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었고 85세였던 2016년 말, 드디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피니가 설립한 면세점 DFS에 명품 시계가 즐비했지만 그는 15달러(약 2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 호화 요트 같은 건 애초에 구입하지 않았고 이동할 때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출장갈 때는 언제나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등 일평생 검소한 생활을 고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칸짜리 소형 아파트를 임대해 부인과 함께 노년을 보낸 피니는 가진 걸 다 나눠주고 홀가분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사론 마켓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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