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④ 내남편 이승만] 安貧樂業, 어려운 나라 실정과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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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④ 내남편 이승만] 安貧樂業, 어려운 나라 실정과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4.03.06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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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개조하지 않고 불편함 감수하고 살아
경비절감 위해 해외순방 때 프란체스카 여사 대동하지 않아

이승만 박사는 30여 년간 독립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돌보거나 제때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결혼 후에도 “내 짐은 내가 정리할 테니 염려말라”고 할 정도로 독신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독신생활을 할 때 사과 한 개로 하루를 지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생일날 굶은 적도 있다. 프란체스카는 나이 많은 남편의 건강을 염려해 식생활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남편 입맛에 맞게 가급적 한식을 준비했다.
 
결혼 후 프란체스카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남편의 면모에 놀라곤 했다. 특히 이 박사의 운전습관은 그녀를 경악하게 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이 박사는 이곳저곳 강연과 방송출연, 인터뷰 등으로 대단히 바빴다. 이 박사는 약속시간에 맞추느라 운전대만 잡으면 과속으로 차를 몰아 프란체스카는 그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다. 

어느 날 격렬하게 차를 몰자 두 대의 기동경찰 오토바이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따라왔다. 이 박사는 더욱 속력을 내며 달렸고 경찰은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따라왔다. 제시간에 도착해 프레스클럽에서 강연을 하자 따라온 기동경찰들은 강연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자 경찰들은 강연내용에 감동해 박수를 치다가 프란체스카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기동경찰 20년에 우리가 따라잡지 못한 유일한 교통위반자는 당신 남편 한 사람뿐이오. 더 일찍 천당 가지 않으려면 부인이 단단히 조심시키시오.”
 
프란체스카는 결국 운전을 배워 운전기사 역할을 맡았다. 독립운동 시절 차가 너무 낡아 고급 호텔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골목에서 내려 이 박사는 호텔로 들어가고 프란체스카는 차에서 기다리곤 했다.
 
프란체스카는 광복된 조국에 돌아온 뒤 첫 거처인 돈암장의 마당을 함께 청소하던 때와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아왔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피력했다. 첫 월급을 건넬 때 이 박사는 아내에게 安貧樂業(안빈낙업)이라는 글씨를 써주면서 “어려운 나라 실정과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고 일러주었다. 

이미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12년을 살아온 그녀에게 그 일은 힘들지 않았다. 돈암장에서 마포장, 이화장을 거쳐 대통령 관저 경무대의 주인이 된 이 대통령은 스스로가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프란체스카는 후일 기자들로부터 “퍼스트 레이디가 될 줄 알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기자가 돌아가고 난 다음 프란체스카 여사는 며느리에게 “바보 같은 질문이다, 암담한 시절에 무슨 퍼스트 레이디냐”고 말했다고 한다.
 
경무대는 일본식과 미국식이 뒤섞인 불편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일본인 총독 미나미가 지은 이 건물에는 역대 조선 총독들이 살았으며 이 대통령이 입주하기 전에 미군 하지 장군이 살았다. 일본식인 다다미방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대통령은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경무대를 개조하지 않았다. 목욕탕의 욕조가 너무 좁아 욕조 한편을 파내 다리를 뻗을 수 있게 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나라 일 보는 사람이 자기 집을 고치다 보면 그런 데서 부정부패가 싹트게 된다”며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손대지 못하게 하였다. 대통령이 진해에 내려가 있는 동안 경무대의 베란다 수리를 했다가 혼이 난 직원들은 다시는 대통령의 허락 없이 경무대를 수리할 수 없었다.
 
경무대 공보실장을 지낸 오재경(전 공보부 장관)씨는 어느 날 밤 경무대 갔다가 이층에서 내려오는 대통령 부부를 보고 이렇게 느꼈다고 한다.
 
“2층에서 가운을 입고 내려오시는데 어느 양로원에서 온 것 같았어요. 커튼 하나도 바꾸지 않고 일본 시대 쓰던 그대로였죠. 경무대를 하나도 수리하지 않고 사용할 정도였어요.”
 
이 대통령은 사람이 흙을 밟으며 흙냄새를 맡아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화장이나 경무대 정원의 나무들도 손수 전지하며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의 손은 하나님이 일하라고 주셨다면서 남자 손이 고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무대 입구의 다발 소나무가 시들시들 병들자 외국 귀빈들에게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맡게 하더라도 나무를 살리기 위해 별 수 없다면서 땅을 깊이 파고 인분을 주었다. 이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할 때도 경비 절감을 위해 대개의 경우 프란체스카 여사를 대동하지 않았다.(계속) [이근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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