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⑬내남편 이승만] 귀국 불가 통보에 다시는 못 일어나... 87세에 타국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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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⑬내남편 이승만] 귀국 불가 통보에 다시는 못 일어나... 87세에 타국서 서거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4.04.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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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병동에 입원한 이 대통령 간호하느라 병원 부속건물 방에서 생활한 프란체스카
1965년 7월19일 0시35분, 5년 2개월의 망명 생활 끝에 이승만 대통령 하와이에서 서거
사진=
무료로 입원한 병원에서 말년을 보낸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시간이 지나면 비행기 여행조차 불가능해진다는 이 대통령 주치의의 판정에 따라 1962년 3월17일, 부부는 귀국을 결정했다. 출발 사흘 전부터 보행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으나 이 대통령은 섭섭해 하는 교포들에게 “우리 모두 서울 가서 만나세”라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출발 당일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낸 뒤 외출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김세원 총영사가 찾아왔다.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총영사가 귀국을 만류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의 눈이 발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누가 정부 일을 하든지 정말 잘해 가기 바라오.”
 
그렇게 말하면서 휠체어에 몸을 기댄 이 대통령은 다시는 혼자 일어서지 못했다.
 
프란체스카는 당시 심경을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오직 내 나라 땅을 밟아보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살고 있던 87세의 노인에게 정부의 귀국 만류 권고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답답하고 앞날이 막막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1962년 초 대통령이 트리풀러 육군병원으로부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 결과를 통보받았을 때 나는 아들 인수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 다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일어나지 못하는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에 주저앉게 된 그때처럼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암담한 때는 없었다.>
 
이 대통령 내외가 귀국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하와이 사회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동정을 표하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마우나라니 요양원의 원장 존슨 여사는 대통령을 무료로 입원시켜 주면서 프란체스카에게 간호보조원의 직책을 맡겼다. 프란체스카는 이 대통령의 병상을 지키며 병원 부속건물 방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독립운동 뒷바라지할 때 곤궁해도 힘든 줄 몰랐으나 하야 후 하와이 요양원 시절에 물심양면으로 가장 어려웠다’고 《대통령의 건강》에 썼다.
 
병상에 누워서도 이 대통령은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존슨 여사가 “소원이 무엇이지요” 하고 물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여비요” 하고 답했다.
 
환갑이 넘은 프란체스카에게 종일 환자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편을 일으키거나 눕힐 때는 “하나 둘 셋” 하면서 힘을 주었는데 그때마다 이 대통령은 넌지시 아내를 바라보며 힘을 덜 주려고 애썼다. 프란체스카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때로 고달프고 괴로울 때는 대통령과 함께 한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아리랑이나 도라지 타령을 부르면서 위안할 때도 있었다.>
 
병원 음식에 질려버린 대통령을 위해 한국 음식을 열거하며 노래를 지어 함께 부르기도 했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치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부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이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평생 희생하는 아내를 위해 아리랑을 개사해 불러주곤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오다가다가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 잊겠네.”
 
병상에서 이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호랑이도 죽을 때는 제 굴을 찾아간다는데…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65년 7월19일 0시35분 이승만 대통령이 5년 2개월의 망명 생활 끝에 서거하자 프란체스카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후일 “그동안 참으로 힘들고 슬플 때도 많았지만 대통령을 간호하며 함께 지낸 날들이 지금은 행복하게 생각되고 그리워지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1990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란체스카는 “혁명정부에서 대통령의 귀국을 만류, 87세의 노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일국의 건국 대통령을 외국 병원의 무료병동에서 돌아가시게 한 것은 유감천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계속) [이근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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