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아트갤러리는 이달 20일까지 다정한 상상력으로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나안나 작가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순간들’을 개최한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한 작가 나안나는 무의식과 의식이 조우하는 환상적 세계를 담은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무의식 속에 떠다니는 이미지 조각을 잡아내는 것에서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경험과 생각, 상상 속에서 잡아 올린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사유를 들춰낸다.
부드럽고 포근한 색채의 배경 위 모난 데 없이 둥그런 대가리에 커다란 눈망울로 귀염성 있게 의인화된 물고기가 주제부를 차지하는 나안나의 작업은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 생물과 해녀가 등장하는 몽환적 세계를 통해 관람자에게 다정한 재치와 해학을 선사한다. 또 물고기를 주제로 다양한 식물문양이 배경을 이루는 나안나의 작업은 일견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민화(民畵) 등의 전통적 요소들을 계승한다. 물고기 그림은 조선시대 민화 중 널리 그려졌던 어해화(魚蟹畫·수생 생물을 그린 그림)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에서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더불어 밤에도 눈을 뜨고 자는 종특성으로 흉한 기운을 막아주는 길상벽사(吉祥辟邪)의 의미로, 힘차게 튀어 오르거나 용으로 변태하는 장면은 입신양명(立身揚名) 의미로도 이해됐다.
나안나의 작업에서는 불화의 요소들도 다수 포착되는데 연꽃,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의 형태와 무늬뿐만 아니라 윤곽선을 그린 뒤 안쪽을 채색하는 구륵법(鉤勒法)과 선으로 윤곽만 그리는 백묘법(白描法) 등의 표현 기법 또한 불화에서 차용된 것이다. 그러나 전통 회화에서 물고기가 길흉화복을 빌기 위한 대상으로만 다뤄졌다면 나안나의 작업에서는 작가 자신 또는 인간의 생애라는 사적 의미가 투영된다는 점에서 그 함의가 확장된다. [김재홍 마켓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