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7세》의 열일곱 살은 이제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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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7세》의 열일곱 살은 이제 어떻게 되나
  • 이근미 소설가
  • 승인 2023.07.03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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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뮤지컬 포스터. 사진=극단 '하늘에' 제공
뮤지컬 《17세》 포스터. 사진=극단 '하늘에' 제공

《17세》, 나의 첫 장편소설 제목이다.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몇 차례 공연했고, KBS 3라디오에서 ‘라디오 극장’으로 극화해 두 달여에 걸쳐 매일 방송하기도 했다. 영화사에서 판권도 사갔는데 제작 소식은 여태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들의 소망인 OSMU(one source multi-use)가 좀 이뤄진 편이긴 하다. 대학 때 은사님이 “데뷔작이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17세》는 마지막 작품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나의 대표작 역할을 하고 있다. 

《17세》가 좀 재미있으니 지금이라도 읽으시라, 괜찮은 작품이다, 꽤 반응 있었다, 뭐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17세라는 나이에 대해 논해볼 참이다. 지난 6월 28일부로 우리나라에서 ‘만 나이’가 통용되면서 17세가 그 17세가 아닌 게 되어 버린 사연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17세》 작품에서 열일곱 살이란 ‘고등학교 1학년’을 뜻한다. 그야말로 세는 나이로 전 국민이 태어남과 동시에 한 살이 되고, 새해가 되면 일제히 한 살씩 더 먹는, 그래서 지금까지 고등학교 1학년은 무조건 아무튼 어쨌거나 17세였다.

뮤지컬 《17세》 공연 장면. 사진=극단 '하늘에' 제공
뮤지컬 《17세》 공연 장면. 사진=극단 '하늘에' 제공

고등학교 1학년, 17세는 어떤 나이일까. 내 소설 《17세》의 무경이, 대도시의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동네 상업고등학교에 갈 처지에 놓이자 에라이~ 가출을 해버린다. 그랬던 무경이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딸 다혜까지 낳았으나 2년 만에 이혼, 친권도 빼앗기고 만다. 

어느 날 청소년이 된 딸 다혜가 고모의 손에 이끌려 무경에게로 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자 고모가 생모에게 떠넘기러 온 것이다. 무경은 낯선 딸에게 엄마의 의무를 다하려 애쓰지만, 어색한 엄마에게 짐이 되기 싫은 딸 다혜는 가출을 해버린다. 무경이 가출했던 딱 그 나이 17세에. 어떻게 아이를 돌아오게 하고, 또 둘 사이의 골을 무엇으로 메울까 고심하던 무경은 자신의 17세 때 이야기를 써서 딸에게 메일로 보낸다.

30년 차이 나는 엄마와 딸의 ‘17세 가출’은 절박함에서 살길을 찾아, 숨 쉴 곳을 찾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가출을 한다는데 17세, 즉 고등학교 1학년의 가출은 좀 다른 양상을 띤다. 아직 미성년자이긴 하지만 17세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헤쳐나갈 길을 찾으려는 의지를 가진 나이라 할 만하다.

《17세》는 ‘17세=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에 붙은 제목이다. 그런데 만 나이가 통용되면서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은 15세 혹은 16세들 차지가 되었다. 만 나이로 인해 ‘17세=고1’이라는 상징성이 사라진 셈이다. 17세는 고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이 되니, 거의 성인과 맞닿은 나이가 되고 말았다. 

장편소설 《17세》 표지. 사진=미래인출판사 제공
장편소설 《17세》 표지. 사진=미래인출판사 제공

나이를 제목으로 쓴 작품이 적지 않다. 노경실 작가의 《열네 살이 어때서?》를 비롯해 열네 살이 등장하는 소설들의 주인공은 대개 중학교 1학년이다. 《열네 살이 어때서?》 도입부에서 수학 선생님은 “이제 초등학생이 아닌 중학생 정도 되면 너희 문제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이순원 작가의 《19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농사를 짓는 정수가 주인공이다. 정수는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나만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2년 만에 학교로 돌아간다. 사랑 고백을 받은 승희 누나로부터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말이 계기가 됐다. 정수가 고3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스무 살이 되기 전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성을 갖는 셈이다.

만 나이 시행으로 문학에서 그간 통용되던 숫자의 상징성이 달라지고 말았다. 《17세》 개정판을 만든다면 《16세》라고 해야 하려나. 어쨌든 《17세》가 그 17세가 아닌 어정쩡한 숫자가 되어버린 건 유감이다. 만 나이가 통용되더라도 17세가 주는, 어설프지만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려는 그 정신만은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근미
문화일보로 등단. 
장편소설 《17세》《어쩌면 후르츠 캔디》《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
         《나의 아름다운 첫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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