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 해병대 출신 ‘코란도 사나이’ 김석원(金錫元)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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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참전 해병대 출신 ‘코란도 사나이’ 김석원(金錫元)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
  • 조갑제 조갑제닷컴·TV 대표
  • 승인 2023.08.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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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故人)은 아버지 김성곤(金成坤) 선생의 뒤를 이어 기업, 언론, 정치, 교육, 예술, 스포츠(보이스카웃)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세계잼버리 대회를 성공시켰고, 용평스키장 개발로 동계올림픽 유치의 기반을 닦았다. 국민대학, 쌍용자동차, 용평스키장, 보이스카웃, 省谷언론문화재단, 성곡미술관 등의 이름으로 기억될 金錫元은 외환위기 이후 倒産, 투옥, 身病 등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데 대한 비판적 열정과 교양 있는 대화를 멈추지 않은 분이었다. 청소년기를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늘 국제적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유지했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해방둥이 출신 기업인 전 쌍용그룹 金錫元 회장이 오늘 새벽 별세했다. 1994년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나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金錫元은 외환위기 이후 倒産, 투옥, 身病 등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데 대한 비판적 열정과 교양 있는 대화를 멈추지 않은 분이었다. 청소년기를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늘 국제적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유지했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사진=성곡언론문화재단
해방둥이 출신 기업인 전 쌍용그룹 金錫元 회장이 오늘 새벽 별세했다. 1994년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나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金錫元은 외환위기 이후 倒産, 투옥, 身病 등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데 대한 비판적 열정과 교양 있는 대화를 멈추지 않은 분이었다. 청소년기를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늘 국제적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유지했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사진=성곡언론문화재단

해방둥이 출신 기업인 전 쌍용그룹 金錫元 회장이 오늘 새벽 별세했다. 향년 78세,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1호실(02-2227-7550), 발인은 29일 오전 7시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 先塋. 유족으로는 부인 박문순, 세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김지명(JJ.FOOD SYSTEMS 대표), 김지태(태아산업 부회장)가 있다.

월남참전 해병대원 출신이기도 한 故人은 아버지 金成坤 선생의 뒤를 이어 기업, 언론, 정치, 교육, 예술, 스포츠(보이스카웃)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1970년대 초에 강원도 용평을 발견, 이곳에 스키장을 건설,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유치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지리감이 비상한 그는 해병대 사병 시절 월남파병을 명령받고 2주 휴가를 받아 돌아다니다가 용평을 찍었고 무리하게 투자, 동계 스포츠의 메카를 만들었다). 그는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그리고 성공한)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주역 중 한 명이다. 

동양통신 설립자 김성곤 선생이 시작하고 故人이 발전시킨 최초의 언론지원단체인 省谷언론문화재단은 1960년대부터 언론인 수백 명의 해외유학 및 연수를 지원, 기자들의 안목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이 재단은 2015년 인촌상을 받았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신한국당의 국회의원(대구 달성)으로 당선되었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쌍용그룹이 해체되면서 물러났고 그 뒤론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공적 활동을 줄였다.

故人은, 박정희 정부 시절 공화당의 실력자로서 김종필을 견제했던 선친 金成坤이 1971년 抗命사건으로 政界를 은퇴했다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복귀한 후인 1975년 急逝하자 30세에 쌍용그룹을 맡아 외환위기 직전엔 財界 순위 6위까지 키웠다. 쌍용자동차에 대한 투자실패가 그룹해체의 계기였다.

1994년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나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런 기록을 남겼다.
<쌍용그룹은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여섯 번째의 재벌 기업이다. 92년 말 기준, 그룹 총매출액은 11조 1000억원, 계열사 수는 국내 22개社, 해외 28개社로 모두 50개社에 이른다. 종업원 수는 2만5000여 명. 계열사 수와 총매출액에 비한다면 종업원 수가 적다. 이것은 쌍용이 진출하고 있는 주요 업종이 시멘트, 정유, 중공업 등 주로 장치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金錫元 회장은 1945년에 출생한 해방둥이로서 한국 나이로 50세다. 「젊은 재벌 회장」이다. 지난 11월24일 서울 중구 저동의 쌍용 본사 건물 4층 회장 접견실에서 金회장을 만났다. 그는 쉽게 잘 웃고, 소리도 컸다. 웃는 표정은 하회탈을 연상시켰다. 그는 대재벌의 회장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중견 회사원 같은 인상을 주었다. 金회장은 대화 도중 서로 의견이 달라도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적으로 풀어가는 호감가는 인물이었다. 예절과 룰을 제대로 지킬 것을 시종일관 주장하는 중년의 「보이스카우트」란 느낌을 받았다.>

국민대학, 쌍용자동차, 용평스키장, 보이스카웃, 省谷언론문화재단, 성곡미술관 등의 이름으로 기억될 金錫元은 외환위기 이후 倒産, 투옥, 身病 등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데 대한 비판적 열정과 교양 있는 대화를 멈추지 않은 분이었다. 청소년기를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늘 국제적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유지했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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