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30대 직장인의 이력서를 건네주면서 커리어 코칭을 부탁했다. 이력을 보니 좋은 학벌에 대기업 2년 차였다. 고민이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지인의 부탁이니 만나보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코칭 받을 당사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과 함께였다. 서른이 넘은 성인이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는 자리에 부모와 함께 오다니 충격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부모님의 질문이 쏟아졌다. ‘자녀의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한 코칭을 받고 부모가 합작 플랜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30대 직장인 본인의 생각이 궁금했으나 함께 한 시간 내내 부모의 질문이 이어졌고, 결국 당사자의 말은 몇 마디 듣지 못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의 서른 살을 떠올려보았다. 나 또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님의 간섭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 부모님은 냉정하다 싶을 만큼 나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셨다. 내가 선택을 주도하고 책임지면서 점차 성장했다.
부모와 함께 온 30대 직장인은 대학교는 물론 직장까지 부모님이 선택해준 곳에서 시작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이직 제안을 할 때 ”부모님과 상의해보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을 때가 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가 적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학생 딸을 둔 친구에게 냉장고에 뭐 있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 딸, 냉장고에 있는 포도랑 식탁 위에 있는 빵 먹어.”
친절하게 답변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냉장고를 열어보면 될 텐데 그걸 밖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냐”고 말했다.
“애가 철이 없어서.”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딸이 아직 자신을 의지하는 것에 뿌듯해하는 기색이었다.
자녀들이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혼자 해본 일이 없으니 자신감을 갖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감도 낮다. 자식을 온전한 성인으로 대하지 않으면 부모는 평생 자식을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 자녀는 기댈 곳이 있어 안정감이 들지 모르지만 평생 부모에게 종속되어 독립된 삶을 살 수 없다.
학교와 전공, 직장과 이직, 이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면 내 인생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스무 살이 넘은 당신의 인생은 당신 것인가? 부모의 것인가?
김소진 뉴욕대학교(NYU) 인사관리 석사. 서울시·과학기술부·경찰청 등 공공기관 채용 면접관으로 활동 중이며, KBS ‘스카우트’, tvN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현재 제니휴먼리소스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성공하는 남자의 디테일》, 《성공하는 남자의 디테일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