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칼럼] ‘밝혀’와 ‘밣켜’ 사이, 맞춤법 공부 ‘외않해’? 
상태바
[이근미 칼럼] ‘밝혀’와 ‘밣켜’ 사이, 맞춤법 공부 ‘외않해’?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3.11.09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진실은 거짓으로 잘 포장한다 해도 언젠가 밣켜진다’

최근 한 운동선수가 SNS에 올렸다가 조롱이 쏟아지자 바로 내린 문장이다. 
ㅋㅋㅋ로 도배된 댓글을 보며 마구 웃다가 촌철살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춤법 모르는 무식이 밣켜졌네ㅋㅋㅋ
밣키려고 하니까 밝혀지는 게 없지 ㅋㅋㅋㅋ 나 우는 중ㅋㅋㅋ
아니 도대체 마약을 왜 해 그냥 인터넷만 켜도 도파민 샤워인데 ㅋㅋㅋ
I’m 밣켜에요
개그로 올린 거 아닐까? 그렇다고 말하면 믿어줄게..ㅋㅋ
아니 틀린 맞춤법 많이 봤지만 이건 혁명수준이네ㅋㅋ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세가지.... 재채기..사랑.......무식함....♧
‘밣켜진다’라니 ‘외않되’ 급인데ㅋㅋㅋ 드립도 아니라는 점에서 ㄹㅇ충격 그 자체
저 정도 망신살이면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틀린 맞춤법을 지적하는 댓글 행진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안심이 되었다. 

맞춤법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한글 파괴’ 운운하는 ‘걱정 칼럼’이 심심하면 나오는 형편이다.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줄임말과 초성까지는 이해한다지만 맞춤법이 엉망이어서 세종대왕께 죄송하고 장차 한글이 지켜지겠느냐는 게 걱정의 핵심이다. 댓글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서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다들 공들여 잘 쓰고 있으니까.

제법 알려진 사람의 공개 게시물에 틀린 맞춤법이 포함되어 있으면 곧바로 질타가 이어진다. 특히 연예인이 사과문을 올릴 때 맞춤법이 틀리면 안티들의 표적이 된다. 

‘밣켜’ 게시글이 뜨자 댓글에 ‘OOO과 함께 맞춤법 공부하라’며 모 기업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그분도 맞춤법에 많이 약한 모양이다. 외국까지 가서 공부 많이 하신 분들, 영어는 유창하지만 한글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있다. 영어 잘하니 한글 틀리는 건 애교로 봐주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틀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식함만 만천하에 드러나니까. 공개적인 글을 쓰려면 맞춤법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거, 명심해야 한다. 

운동선수를 영입할 때 자기소개서를 받지 않아서 ‘밣켜’ 씨가 맞춤법에 약한 걸까? 

몇해 전 취업포털 ‘사람인’이 한글날을 맞아 기업 인사담당자 2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적이 있다. ‘자기소개서 맞춤법 실수에 대한 평가’를 조사했을 때 87.1%가 부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특히 이들 중 37.2%는 맞춤법을 틀린 것만으로 자기소개서를 탈락시킨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설문에 응한 한 담당자는 “인터넷 용어나 줄임말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무심코 자기소개서에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기소개서는 엄연한 비즈니스 문서로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해 정확하게 의사 전달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예전에 페이스북에 거의 매일 글을 올리던 모 씨, 수십 권의 책을 냈고 강연도 많이 다니던 분이다. 그 사람은 습관적으로 ‘찾는다’를 ‘찿는다’로 썼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글에 ‘찿는다’가 자주 등장해 내가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지적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접속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친한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 틀린 맞춤법이 보이면 바로 지적한다. 다른 사람과 문자 할 때 웃음거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카들이나 지인들이 잘 틀리는 단어는 ‘할께, 뵈요, 이예요’이다. ‘할게, 봬요, 이에요’가 맞다고 지적한 후 ‘오늘의 국어 공부 끝!’이라고 보내면 다들 재미있게 받아들인다.

내가 정말 모르고 있다가 깨달은 건 ‘돼라’이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OO가 되라’라는 문장을 ‘OO가 돼라’라고 고친 걸 보고서야 이마를 쳤다. 한글 맞춤법을 완벽하게 통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띄어쓰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서로 양해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대학원 첫 수업 때 교수님이 종이를 나눠주었다. 맞춤법 시험을 친다는 것이었다. 다들 피식 웃다가 쩔쩔맸다. 당시 평균 성적이 70점 정도였고 나는 겨우 67점을 받았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이미 작가이거나, 작가 지망생들이 모인 반에서 70점이라니. 한글 맞춤법은 결코 쉽지 않다.

나도 대학에서 강의할 때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맞춤법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성적에 반영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점수를 본 학생들이 맞춤법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초고’를 올리는 건 매우 용감한 일이다. 출판사는 책을 내기 전 교정전문가에게 원고를 맡겨 꼼꼼히 점검한다. 메이저급 일간지 교열부 기자들은 매일 눈을 비비며 오탈자와 오문을 찾아내고, 수준급 매거진도 교열 담당을 두고 기사를 일일이 점검한다. 

이를테면 글 선수도 몇 차례의 관문을 통과해 글을 발표하는데 운동선수가 글을, 그것도 남을 저격하는 내용을 너무 쉽게 노출한 것 아닌가 싶다. 댓글에서 여러 사람이 운동선수에게 ‘검색을 하라’고 권했다. 예상컨대 운동선수는 ‘확신의 밣키’여서 검색의 필요성을 못 느낀 듯하다. 

한글을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하지만 헷갈리는 글자들이 많다. 가장 과학적인 글자, SNS 시대에 빛을 발하는 문자, 자랑스러운 한글을 더 열심히 익히고 사랑해야 한다.

외계어 같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도 맞춤법을 착실히 지키는 게 반가워 주절주절 써봤다.

그나저나 저 운동선수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 ‘밣켜’지나요? 아마도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듯. 밣키는 것으로는 밝힐 수 없을 테니까.   

이근미  문화일보로 등단 
장편소설 《17세》《어쩌면 후르츠 캔디》《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나의 아름다운 첫학기》 비소설《+1%로 승부하라》《프리랜서처럼 일하라》《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외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