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칼럼]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의 ‘네버랜드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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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칼럼]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의 ‘네버랜드 신드롬’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4.01.0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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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켓뉴스
사진=마켓뉴스

소설 ‘피터 팬’ 속 주인공 피터 팬이 사는 네버랜드는 아이들이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곳이다. 계속 젊게 지내고 싶어 하는 현상, 우리 사회에 ‘네버랜드 신드롬’이 퍼지고 있다. 배경은 2030 중심의 청년문화가 핵심 코드가 되면서 ‘나는 젊다’고 생각하는 윗세대들이 그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유년화는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활양식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으로 현실을 위안받고자 하는 심리에다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의 장막이 걷힌 것을 원인으로 짚었다. 개인 취향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특징적인 현상은 ‘어릴 때 즐기던 아이템 구매에 열을 올리고, 외모를 가꾸고 꾸며 더 어려 보이려 하며, 아이들처럼 쉽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 중의 하나는 수명이 길어지면서 생애주기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2023년 화제의 영화를 꼽는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빼놓을 수 없다. 관람객 473만 명의 구성비를 보면 1020 세대보다 3040 세대가 더 많았다.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해 여러 상영관을 떠돌며 ‘N차 관람’을 하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영화 개봉 후 관련 단행본이 250만 부나 판매되기도 했다. 수십 년 전 콘텐츠의 부활에 열광하는 것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3040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현상이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또 다른 현상으로 귀여운 캐릭터의 점령을 꼽을 수 있다. 요즘 핸드백에 다양한 키링을 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다. 학창 시절 백팩에 귀여운 인형을 달고 다녔던 이들이 요즘 명품백에 키링을 달고 다닌다. 블랙핑크와 뉴진스 등 유명 가수들이 SNS에 ‘키링 인증샷’을 올리자 해당 인형이 품절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마트의 통계에 따르면, 상반기 토이 키링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약 1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입 연령층 순위는 30대, 40대, 20대, 10대 순이었다.

2022년 연말 방송인 전현무가 MBC 연예대상을 받을 때 동료들이 공주 치장을 해주어 웃음을 자아냈는데 유행의 출발점은 배우 한소희였다. 한소희가 생일파티에서 착용한 다이소 어린이용 액세서리인 ‘공주세트’는 이제 어른들의 생일파티 필수템이 되었다.

고객들이 귀여운 것을 선호하자 기업들도 발 빠르게 호응하고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제이릴라’라는 고릴라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내세웠다. 곧이어 동네 동생이라는 설정의 ‘원둥이’ 캐릭터가 편의점 ‘이마트24’ 캐릭터로 등장했다. 롯데그룹은 ‘벨리곰’을 내세워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베스킨라빈스, 파리바게트, 던킨도너츠 등을 운영하는 SPC는 제품에 헬로키티, 마이멜로디, 쿠로미 캐릭터를 활용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은 트렌디한 2030을 타깃으로 출발했다. 백화점의 실소비층이 중장년층임을 잘 알면서도 과감한 시도를 이유가 있었다. 5060 소비자를 겨냥하면 2030이 외면하지만, 2030의 관심을 끌면 5060까지 찾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해 ‘더현대 서울’에 10대부터 60대까지 몰려들어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키덜트(kidult)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키덜트는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신조어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녀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기는 키덜트 부모도 많아졌다. 드론, 무선조종 자동차, 레고 등을 가족이 함께 즐기며 유대감을 쌓는다. 레고를 즐기는 성인은 오래전부터 많았고 그들을 겨냥한 정교하면서 비싼 레고 제품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어른들의 장난감 사랑은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제약되면서 더 활성화된 면도 있다.

네버랜드 신드롬을 마냥 즐겁게 지켜볼 수만은 없다. 우리와 유사하게 네버랜드 신드롬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청년들, 중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기생 독신’, 학교에서 자신의 아이만 챙겨 주기를 바라는 ‘괴물 부모’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일본 전문가들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나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일본의 모습을 ‘전 국민의 철부지화’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세 가지 문제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히키코모리와 기생 독신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었고, 최근 ‘괴물 부모’들이 교사를 괴롭힌 사실이 드러나는 중이다.
  일본의 ‘기생 독신’을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라고 한다. ‘부모님 연금을 축내는 자녀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캥거루족’으로 부른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긍정적인 측면은 주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며,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다만 건강도 챙기고, 자신의 앞날도 개척해가며 즐겨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이근미 작가]

*이 칼럼은 '미래한국' 12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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