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는 시행령·시행규칙이나 행정규칙(훈령·예규·고시) 단계에서 기업 경영에 애로를 초래하는 총 59건의 ‘한시적 규제유예 과제’의 개선을 지난 23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고 29일 밝혔다.
한경협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한경협 측에 각 부처가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는 시행령 이하 단위의 규제개선과제 발굴을 요청했다. 이에 한경협은 경제 현장 최일선에서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 59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한경협이 회원사를 대상으로 규제 애로를 조사한 결과, 규제 준수를 위한 기술이 개발되기도 전에 규제부터 도입하는 사례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1일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아파트 층간소음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건설사가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보완시공을 의무화하고 기준 미달 시 아예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정작 강화된 기준을 기업들이 충족시킬 수 있는 공법이나 기술개발이 없다는 점이다.
한경협은 “소음방지 보완 기술도 상용화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사용승인 보류가 날 경우 업체들은 막대한 손해배상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며 “규제 기준에 맞춘 소음방지 및 보완 기술이 개발돼 상용 가능할 때까지 규제를 유예해 줄 것을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산업 발전이나 산업간 융복합 추세에도 불구하고 기존 법·제도들은 이러한 변화를 미처 반영하지 못해서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들도 있다. 무인(無人)선박 자율운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사들은 선원 승선 없이 원격제어로 선박을 운항할 수 있는 자율운항기술을 개발 중인데 이를 위해서는 실제 해역에서의 실험 운항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유인(有人) 선박에 적용되던 현행법상의 규제를 무인선박에 적용할 경우 관련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한경협은 지적했다.
이에 한경협은 무인 자율운항 선박의 실제 운행에 관한 규정이 아직 미비한 상황으로 관련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건의했다.
기업의 신사업 진출이나 서비스투자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제들이 기업의 영업 범위나 사업 가능성을 축소하는 규제, 일명 ‘일단 하지마 규제’도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받고 이상 징후 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신속하게 연계될 수 있는 토탈 헬스케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보험회사의 경우 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건강 유지·증진 또는 질병의 사전 예방 등을 위해 수행하는 업무’를 영위하는 자회사 설립 및 소유가 허용된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은 영리 목적의 의료기관·의료인 소개·알선·유인 행위를 금지한다. 이로 인해 보험회사의 자회사가 토탈 헬스케어 서비스을 제공하면서 고객에게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을 소개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 행위가 될 소지가 있다. 이에 한경협은 의료법이 앞으로 새로 생겨날 수요자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의 출현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관련 규제의 개선을 건의했다.
한경협은 또 방위사업청장의 허가를 받아 수출을 완료한 무기와 관련 구매국 요청으로 정비용 수리 부속을 공급해야 하는 경우에 건별로 수출 허가를 일일이 다시 받아야 하는 행정절차도 간소화시킬 것을 건의했다. 구매국 요청으로 해당 방산물자가 사용되는 것이 명확히 입증된 만큼 부품에 대한 개별수출허가를 면제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법·시행령 뿐만 아니라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들, 여기에 부처 내규와 지자제 각종 조례들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에서 기업규제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기업에는 법령 못지않게 행정규칙 이하 단계의 규제도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국무조정실이 적극 주도해서 기업 최일선에서 적용되는 불합리한 현장 규제를 적극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성태 마켓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