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⓽내남편 이승만] “유머 풍부해 늘 주변 즐겁게 해... 모함하고 중상하는 자에게도 늘 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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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⓽내남편 이승만] “유머 풍부해 늘 주변 즐겁게 해... 모함하고 중상하는 자에게도 늘 관대”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4.03.25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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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말 들었지만 확고한 신념·사명감으로 굽히는 일 없이 일해
친척들 정부 요직에 기용하거나 특별 배려를 해준 적이 없어
8명의 자녀와 함께 피난 가는 피난민에게 "참으로 그는 행운아야"
1949년 8월, 서울에서 장개석 총통과 함께 한 이 대통령 부부. 사진=이승만기념관
1949년 8월, 서울에서 장개석 총통과 함께 한 이 대통령 부부. 사진=이승만기념관

이 대통령은 90세로 장수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의 건강》에서 남편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했다.
 
<웃음을 잃지 않았고 질투나 노여움, 분노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남편은 유머가 풍부해 늘 주변을 즐겁게 하였으며 모함하고 중상하는 자들에게도 늘 관대했다. 나에게도 항상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타일렀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건강을 가져왔다. ‘독립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굽히는 일 없이 일했다. 늘 젊은이처럼 활기에 차서 일했다.
 
그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견지했다. 80이 넘은 후에도 새로운 영어단어를 손바닥에 써가지고 외우기도 했다. 남편이 건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기어이 이룩해야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신념을 갖고 불철주야 일하며 노력한 데 있다. 할 일 없이 처져 있는 노인들과 달리 목표를 갖고 살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질 때 사람은 노력하게 되고 마음과 몸의 건강도 지켜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흙을 밟으며 흙냄새를 맡아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며 항상 우리나라의 나무와 흙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일평생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한 것도 건강의 비결이다.>
 
프란체스카는 허욕 없이 편안한 마음가짐과 절도 있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함께 남편이 균형있는 식사, 과식을 피한 것, 적당한 운동을 했다는 점을 장수비결로 들었다. 아울러 모유를 먹고 자란데다 어머니가 만든 무공해 건강식만 먹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7년간의 옥중생활을 견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의 건강 비법을 ‘마음을 편안히 갖고 잠을 잘 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많은 사교모임에 나갔지만 술과 담배는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경무대 파티 때도 술을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초청받은 사람들은 미리 술을 마시고 오곤 했다. 이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장작 패는 일로 해소했으며 평소 맨손체조와 테니스를 즐겼다.
 
저녁 때면 부부는 꼭 산책을 했다. 한번은 경무대 뒷산을 올라가는데 경호관이 계속 따라오자 “이 사람아, 여기는 공산당이 없는 데야. 이 경사는 연애도 안 해봤나”고 말해 그제야 되돌아간 적도 있다.
 
프란체스카는 이 대통령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았다. 1990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박사의 건강을 이유로 외출과 방문객 접견들을 삼가케 한 것이 항간의 인의 장막, 경무대 안주인이라는 구설수에 오르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후진국의 족벌체제를 가장 싫어한 이 대통령은 친척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하거나 특별 배려를 해준 적이 없다. 그것 때문에 프란체스카는 대통령과 만남을 막고 있다는 원망을 듣기도 했다.
 
당시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을 보필했던 사람들도 프란체스카가 정치에 관여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전 공보부 장관 오재경 씨는 “3년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프란체스카 여사가 어떠한 면에도 정치에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공동의 작업을 내조하는 입장에서 잘 지켜왔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자유당 시절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안희경 씨는 “박마리아와 모 비서관, 프란체스카 여사 셋이서 인의 장막을 짜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며 “정치적, 공적으로 개입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무대 내실 생활은 대체로 평안했으나 자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 못지않은 애처가였지만 “아들 하나 못 낳아주는 마누라”라고 말해 아내를 가슴 아프게 했다. 프란체스카는 <6·25 비망록>이나 자신의 저서 《대통령의 건강》 곳곳에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을 피력했다.
 
전쟁 중에 부산에서 오후 늦게 민정시찰을 나간 대통령은 부산역 근방에서 8명의 자녀와 함께 피난 가는 피난민을 만났다. 대통령은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 그 사람이 구미에 사는 사촌형 집에 간다고 하자 프란체스카가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많은 식구를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럴 때는 자녀가 많은 부모들이 힘들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코끼리는 아무리 코가 길어도 자기 코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자기 자식을 짐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참으로 그는 행운아야”하고 부러운 듯 말했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 그녀의 마음이 몹시 아팠다. (계속) [이근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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